필록세라는 포도나무 뿌리에서 서식하며 뿌리의 진액을 빨아먹고 사는 1mm정도의 미세한 진딧물 입니다.
이 진딧물이 와인 역사를 크게 뒤흔들었다니.. 믿기시지 않겠지만,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삶과 생활,문화가 변해가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렇게 놀랄일만은 아닌듯하네요.
필록세라는 미국에 서식하는 진딧물이었으나 1850년대 미국에서 유럽으로 유입되었다고 알려졌답니다.
처음으로 포도나무에 피해를 주기 시작한것은 1863년 영국에서 첫 보고되었으며, 1869년 프랑스 보르도, 1875년 이탈리아,1878년 스페인에서 이 진딧물은 포도나무의 뿌리를 먹으며 영양소와 물을 흡수하여 성장을 정지 시키고 시들게 만들었답니다.
미국의 포도나무들은 오랜 세월 필록세라와 함께 살며 싸워왔기에 필록세라 유충을 방어하도록 진화되어 왔지만, 저항성이 전혀 없던 유럽의 포도나무들은 그야말로 초토화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 원인 자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에 단지 날씨나 토양 문제로만 또는 종교적 문제로만 인식하였기에 대처가 늦어진 것도 화를 키운 큰 몫을 하였답니다.
1870년 프랑스 정부는 필록세라 퇴치법을 발견에 많은 포상금을 걸었지만 결국 저항성이 있는 미국품종 나무 뿌리에 유럽품종의 나무를 접붙이는 방법이 유일한 방법으로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 높은 유럽인, 유럽의 많은 포도원 주인들이 새로 접붙인 포도나무에서 미국의 포도맛이 나지 않을까라는 우려로 꺼려하여 피해가 커지고 있었으며 1881년 보르도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접붙이기를 최고의 필록세라 퇴치법으로 채택하고 나서야 대대적인 접붙이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접붙이기를 할 여력이 없던 많은 소작농들은 결국 파산을 하였답니다.
접붙이기의 결과 병충해에 강하고 유럽의 포도맛은 유지되었다지만, 뿌리는 아메리카종 그리고 가지는 유럽종인 결국 유럽의 포도나무는 잡종이 되어버렸답니다(2/3). 물론 필록세라의 피해를 입지않은 지역도 많았기에 그 포토나무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지역도 많답니다 (1/3).
필록세라의 영향 1) A.O.C 의 신설
필록세라는 유럽의 수많은 와인 생산자들의 파산을 초래하였고 와인 공급이 오랫동안 원활하지 않게 되자 유통시장에서는 와인에 물을 타거나 가짜 와인에 피해를 입지않은 유명한 산지의 상표를 속여 붙여 시장에 유통되기 시작하여 그야말로 와인 시장이 혼란해지기 시작하였답니다.
이에 정부와 와인생산자들은 가짜 와인과의 전쟁을 선포하였고 정부차원에서의 와인 생산에 관한 규제와 법률인 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ollee) 가 이때 신설되는 계기가 됩니다 (현재는 AOP) . 즉 Appellation Bordeaux Controllee 라고 레이블에 써져 있다면, 보르도에서 재배한 포도로 이 와인을 만들었다는 것을 정부 차원에서 증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록 와인의 아픈 역사라고 할 수 있지만 이를 기점으로 프랑스 정부와 와인생산자들이 더욱 품질을 높이기 위한 기준을 만들어 나갔기에 와인의 역사가 더욱 깊어지고 소비자들에게 검증된 와인을 만들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필록세라의 영향 2)맥주 그리고 스카치 위스키의 호황
와인 시장이 혼란해지고 줄어든 와인 생산량은 유럽에서 맥주, 위스키, 곡류주의 소비를 이끌어 내기 시작하였답니다.
가짜 와인이 판을 친 덕분에 천대 받던 맥주는 상류 층에서도 빛을 보게 되었으며, 와인을 증류시켜 만드는 코냑을 비롯한 브랜디 역시 품귀 현상을 보이시작하였답니다.
이때 당시 막강한 마켓 파워를 지녔던 영국은 각종 사기 행위가 만연한 프랑스 와인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가졌지만 술은 마시고 싶어서 찾은 대체 품이 바로 스카치위스키였고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답니다. 현재도 스코트랜드의 위스키 업자들이 호황을 누릴 수 있는데는 필록세라가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한 것이랍니다.
필록세라의 영향 3) 신세계 와인의 발전 그리고 칠레와인 "나에겐 기회"
필록세라에 의해 황폐화된 보르도 지역의 와인생산자들은 스페인으로 이주하여 리오하 와인이 시작되었고, 남아프리카 ,남미, 호주 등으로 와인 산업의 이주도 촉진시켜 신세계 와인산업을 발전시키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유럽의 포도나무가 잡종으로 변화되던 시기 필록세라를 피해간 곳이 바로 칠레 입니다.
칠레의 와인 산업은 1551년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아귀르가 칠레에 처음으로 포도나무를 들여 오면서 부터 시작되었으며,1817년 칠레가 에스파냐로 부터 독립하면서 독자적인 발전이 진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좋은 품종을 재배하고자 "1851년" 유럽에 필록세라가 퍼지기 전 프랑스로부터 카베르네 소비뇽,피노 누아, 샤르도네 등의 품종을 대거 들여와 와인을 생산하였는데 아이너리하게도 유럽이 필록세라로 황폐화 되어 교배종이 재배 될 때 칠레에서는 순수 혈통의 포도나무가 재배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유럽에서 큰 피해를 본 와인 생산업자들이 칠레에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칠레는 프랑스 와인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되었고 칠레의 와인 산업은 세계적인 유명세와 더불어 호황기를 맞이하게 되었답니다.
오늘날 칠레의 고급 와인으로 꼽히는 알마비바는 이때 프랑스의 유명 사또 무똥 로췰드사와 칠레의 포도원 콘차이토르가 50:50으로 합작하여 만든 명품 와인이랍니다.
2004년 개봉한 국내영화 "범죄의 재구성" 에서 주인공 박신양이 칠레와인을 극찬한 재미있는 대사가 있답니다.
"아니 뭐 프랑스 거 못마시는 건 아닌데.. 거 2차 대전 때 독일 놈들이 프랑스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었잖아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겠어? 그런데 포도밭은 남아 났겠느냐고? 오리지널 그냥 다 타서 없어졌지! 그리고 나서 다시 심었는데 뭐 포도 자라는 데 하루 이틀 걸리나? 근데 칠레에는 오리지널이 남이 있다 이거죠. 잘 모르는 사람들이 프랑스 와인, 프랑스 와인 찾더라고?"
지금도 역시 프랑스 와인의 맛과 향은 우수하지만 저 대사는 틀린말은 아니랍니다.
실제 1,2차 세계대전을 겪고 프랑스 포도밭의 2/3 가 황폐화 되었고 그 이전에는 필록세라로 2/3가 황폐화 된 후 잡종 품종으로 재배되었던 역사가 있으니..
유럽의 포도밭 2/3를 황폐화 시키고 전통과 역사를 가졌던 포도품종이 교배종으로 변화되는 아픈역사를 가졌지만 우리가 현재에도 유럽 그리고 프랑스 와인을 최고로 여기는며 즐길수 있는 이유는 아마 그 아펐던 시절 좌절하지 않고 역사적 자부심을 유지한채 더욱 품질향상에 노력했던 와인생산자들이 있었기 때문일것입니다.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힘든 시기와 많은 삶의 변화를 가져다 주고 있지만 다시 돌아올 그날들을 위해 Cheers!!
'Wine > 와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와인 이야기] 네고시앙- Negociant (0) | 2022.01.11 |
---|---|
[와인 이야기 ] 하우스 와인(House Wine) (0) | 2021.11.28 |
와인 잔 이야기 (0) | 2021.11.14 |
와인 한잔 (0) | 2021.10.17 |
뱅쇼 - 뱅쇼 만드는 법 (0) | 2021.09.26 |
댓글